미디어센터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브메뉴 바로가기

오피니언

주소복사

오피니언

마음을 끄는 사람 되기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10월 22일(수)] 마음을 끄는 사람 되기 박현진 교수 (인문콘텐츠대학 한국어문학과) 제 2언어 학습 이론은 20세기 중반부터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언어 학습을 주로 인지적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지만 점차 감정적, 정서적 요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촘스키(Chomsky)의 이론이 지배적이던 가운데 실제 학습 환경에서 인지와 감정의 조합으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은 크라센(Krashen, 1982)의 감정 여과기 가설(Affective Filter Hypothesis)의 영향이 크다. 크라센은 학생의 감정 상태가 제 2언어를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학생의 동기, 불안, 스트레스 정도와 같은 감정적 요인이 일종의 여과기(filter) 역할을 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언어 입력이 기억되는 것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가 좋아서 한국에 온 후 한국 기업에 취업하고 싶은 꿈이 생긴 외국인 학생’이 ‘부모님이 보내서 한국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보다 한국어를 더 잘 배울 수 있다. 제 2언어 학습 이론에서 감정이 인지적 과정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감정이 언어 입력의 문지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감정 상태가 인지적 학습의 전제 조건이 되기에 감정이 부정적이면 인지적 노력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이는 제 2언어나 외국어 학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속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자신의 악마 조카 웜우드를 가르치며 “인간의 마음을 방해하는 원수(하나님)와 떼어 놓는 데는 불안과 염려만 한 것이 없지. 원수는 사람이 현재의 일에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작전은 그들이 앞으로 닥쳐올 일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악마는 인간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 일을 과도하게 생각하게 해 현재의 삶과 하나님과의 연결을 악화시키는 데에 감정을 활용한다. 인간이 자기 심리 상태에 휘둘리면 정보를 듣고 이해하는 인지적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앞으로 학교의 상황이 어떻게 될까?’와 같은 눈앞의 염려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나면 아무리 좋은 하나님 말씀이라도 안 들리고 안 보일 수 있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필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과연 나는 내 마음의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 개인적인 감정이 학생들에게 전이되지는 않는가? 나아가 나는 교수로서 학생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교수인지, 내가 가르치는 방식은 학생들을 공부하고 싶게 만들 수 있는지 돌아본다. 내가 느끼는 기쁨과 희망이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에게도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국어 과목이 좋아졌다는 학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10-16
- 14
숫자로 환산되는 노력, 공백기의 공포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10월 22일(수)] 숫자로 환산되는 노력, 공백기의 공포 양예은 기자 (kikiyye@jj.ac.kr) 구직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은 “이 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요?”라는 말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가진 휴식,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기 위해 보낸 시간, 몇 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훌쩍 떠난 여행은 면접관들에게 백지의 시간으로 보인다. 공백기는 게으름의 증거가 된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7명은 “공백기에 대한 질문이 두렵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압박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취업을 앞둔 대학생일 것이다. 대학생에게 스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에서 필수로 요구하는 각종 자격증, 900점대의 토익 점수와 4점대의 학점, 방학 중 인턴 경험 등 수치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 자신의 간판이 된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명확히 알고 즐겁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의미한 대외 활동과 관심 없는 자격증 취득에 내몰린다. 모두가 대학 4년 동안 이력서를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열된 경쟁 속에서 휴식은 사치로 여겨진다. ‘공백기가 있으면 취업에 불리하다’는 괴담 속에서 청년들은 의미 없는 활동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게 된다. 면접 때 “뭐라도 했다”라고 말하기 위해 취미나 여행을 통해 성장을 이루었다고 작성한다. 그렇다면 숫자는 인간을 평가하기에 적합한가? 토익 점수는 언어 능력을 온전히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실제로 해외 지사와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단편적이다. 봉사 활동 시간은 인성을 증명하기 어렵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는 큰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 진정한 배움보다는 이력서 채우기용 활동이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스펙 쌓기용 대외 활동에 참여할 경우, 무임금이거나 적은 보상 때문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74%가 “스펙 쌓기가 즐겁지 않다”라고 답했으나, 그중 60%가 “그럼에도 스펙 쌓기를 그만둘 수 없다”라고 답했다. 모두가 이런 모순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비교과 프로그램과 자격증 강좌, 각종 대외 활동을 경쟁적으로 운영하며 스펙 쌓기에 전념한다. 이러한 취업 준비 프로그램은 많은 학생에게 도움을 주지만, ‘쉼의 의미’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대학생에게 공부와 휴식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것도 대학의 역할이다. 기업이 단순히 지원자를 효율적으로 선발하기 위해 만든 평가 방식의 피해자는 결국 청년이다.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일부 기업들은 ‘직무 역량 중심’ 채용을 확대하며 공백보다 ‘경험의 질’을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청년이 쉬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같은 분야 학생들이 모여있는 대학교 특성상 남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경쟁이 동기부여가 되어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압박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 삶의 중심이 뚜렷하지 않은 청년에게 그 무게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을 떨쳐내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마음의 부담은 줄어든다. 필요한 휴식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가 규정한 ‘공백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의미다. 공백기가 있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면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격증의 개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찾은 의미와 성장이다. 자신을 알고 이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떤 수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스펙이다. 노력은 수치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시간의 총합이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10-16
- 14
고교학점제, 자율이라는 허울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10월 22일(수)] 고교학점제, 자율이라는 허울 김소율 기자(@jj.ac.kr) 2025년, 전국 고등학교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었다.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해 학점을 취득하는 이 제도는 획일적 주입식 교육을 넘어, 진로와 적성에 맞춘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으로 출발했다. 교육부는 이를 공교육 혁신과 ‘학생 중심 교육’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현재, 정책 명분과 현실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존재한다. 자율과 다양성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허울뿐인 선언에 그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과 교사를 경쟁과 혼란의 덫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제도의 핵심은 학생이 학습의 주체가 되어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율’과 ‘다양성’이다. 그러나 상대평가 체제는 이러한 이상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학생들이 진로와 흥미보다 점수 획득이 유리하거나 경쟁이 덜한 과목으로 몰리면서, 최소 수강 인원을 충족하지 못한 과목은 폐강된다. 결과적으로 많은 학생이 원하지 않는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이상적인 맞춤형 교육을 보장한다던 제도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학생들을 경쟁의 구도로 몰아넣고 있다. 교사들의 부담도 심각하다. 학생별 시간표 조정, 과목 개설·폐강 관리, 진로 상담, 미이수자 보충 지도까지 이를 수행할 인력과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전체 수업 3분의 2 이상 출석, 학업 성취도 40% 이상)까지 시행되면서 추가 행정 부담이 발생하고, 수업 준비 시간까지 줄어들어 수업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내신 5등급제와 현 체제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등급 간 구간 확대를 목표로 한 5등급제는 오히려 경쟁 압박을 강화했고, 상위 등급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커지며 학생들은 선택의 자유보다 등급 경쟁에 몰리고 있다. 교육청은 지난 9월 25일 고교학점제 개편안을 발표하며 보충수업 시간 완화, 출석 미달 학생의 온라인 추가 학습, 출결 관리·학생생활기록부 기재 부담 완화, 다과목 수업 교사 연수, 교사·강사 인력 확충, 간 온라인 교류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형식적일 가능성이 크다. 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학생과 교사에게 부담만 전가하고 있다. 특히 아직 고1인 학생들에게 진로 설계와 과목 선택을 동시에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 학생 중심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려면, 현실적 여건을 갖추고 현장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준비 없는 시행으로 혼란만 키우고 있다. 결국 학생들을 위한 제도라는 명분은 사라지고, 경쟁과 부담만 남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교학점제의 유지는 의미가 없다. 학생이 진정한 학습의 주체가 되려면,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고 새로운 교육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학생의 선택이 경쟁의 굴레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키우는 날개가 되기 위해서는 현 제도의 시행을 다시 한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10-16
- 50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영국 토트네스에서 배운 것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9월 23일(화)]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영국 토트네스에서 배운 것 - 프로젝트 기반 공동체를 만들지 말고, 공동체 기반 프로젝트를 하라- 미래융합대학 창업경영금융학과 이재민 교수님 2019년 여름, 나는 영국 데번주의 작은 마을 토트네스를 방문했다. 이곳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E.F. 슈마허의 이름을 딴 슈마허 대학이 있고, 세계적인 전환마을 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현재 ‘돼지카드’로 통하는 전주시 지역사랑상품권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평화동 지역에서 공동체화폐 '꽃전' 리빙랩을 설계하고 있었다. 지역화폐 연구자로서 정부 지원에만 의존해 경제적 유인만으로 유통시키려는 우리 지역사랑상품권을 넘어 지속가능성과 공동체성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설계하려 고심하고 있었다. 토트네스에서 만난 세 가지 진실 10일간의 체류에서 나는 세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일단 아이디어가 있으면 실행하면서 다듬어 간다. 토트네스 사람들은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작은 실험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장해 나가며 현실에 맞게 모습을 갖추어 갔다. 둘째, 일을 크게 하는 데 의미를 두지 말고, 작은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영국 지역화폐에 큰 영감을 준 토트네스 파운드는 할인 혜택도 없었고 지류로서 사용하기도 불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역 상품을 10% 더 구입하자'는 로컬푸드운동의 상징으로 기꺼이 이 불편함을 감수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도 그해 여름 폐화되었다. 그들은 목표와 수단을 정확하게 구분하였다. 10년이나 사용하던 지역화폐를 목표가 달성되고나니 과감히 폐화시켰다. 수단이 목적을 잠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셋째, 프로젝트의 성패는 끝난 후 참여자들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는가에 있다. 가게마다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게시판이 있고, 강가 벤치에는 "누군가의 노을을 즐기던 추억의 장소"라는 작은 명판도 붙어 있다. 빈 공간에 설치된 작은 가든들에는 “필요한 분은 끊어가도 됩니다”라고 써 있다. 누군지도 모를 이웃들과 그들은 많은 관계로 얽혀져 있는 온기를 느낄 수있었다. 그들에게 관계는 프로젝트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4H를 통한 전인교육 슈마허 대학은 Head, Hand, Heart, Harmony의 4H를 추구하며, 머리만 굵게 만드는 대학교육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학생들은 직접 농사를 짓고, 채소를 기르고, 채식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배운다. 모든 프로젝트는 팀으로 진행된다. 학장은 "강의식 교육은 없다. 학생들이 리빙랩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막혀서 오면 '너희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을 뿐"이라고 했다. 그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돌아오자 2020년 신설된 창업경영금융학과에서 새로 자리를 잡았다. 대안대학인 슈마허대학을 머릿속에 그리며 지난 5년간 학생들과 함께 학교밖에서 디자인씽킹 기잔 리빙랩을 진행했다.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대학의 역할과 교수의 역할에 대해 어렴풋히 그 의미를 깨달았다. 지역에서 피어난 작은 변화들 2019년 설계된 공동체 화폐 '꽃전'은 지금도 전주 평화동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2020년 학생들과 학산종합사회복지관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공동체화폐 ‘꽃전’ 대출사업 '모두의 곶간'을 설계했다. 금융취약계층을 위해 무담보, 무이자, 무추심이라는 3무 대출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게 될까요? 그것도 취약계층에?” 8개월 간의 실험은 99% 반환이란 성공으로 나타났고, 신협중앙회는 선 듯 1,000만원을 지원했다. ‘모두의 곶간’은 지금도 금융취약계층에 희망을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창업교육 능력이 없던 전주시자활센터의 청년자립도전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업리빙랩 프로젝트로 문을 연 ‘콩닥콩닥’은 스스로 인큐베이팅을 하면서 3호점까지 늘었다. “꽃전”리빙랩의 경험을 살려 부여 지역사랑상품권 굿뜨레페이 재설계를 위한 리빙랩은 코로나 속에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1년간 진행되었다. 다음해 전국 최우수 지역화폐로 선정되어 대통령 상을 받았다. 현재 부여군에서는 충남 다른 지자체 비해 1인당 2.5나 더 많은 지역화폐가 유통된다. 전주팔복동 도시재생지역 리빙랩 프로젝트, 임실치즈마을 살리기 프로젝트, 진안군 어르신 공유보조보행기 설계 리빙랩프로젝트 등 학생들과 지역에서 진행된 리빙랩은 더 많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지역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었다. 부여에서는 1년에 걸쳐 농민, 전통시장, 대형마트, 하나로마트가 모두 합의하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우리에게는 완벽한 시스템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요하다. AI 시대, 교육의 새로운 역할 슈마허 대학이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답을 찾는 데 필요한 지식, 직관 및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이 발견을 곧바로 현장에서 실험해 나가는 것이었다. AI 시대, 대학교수의 지식은 한낱 티끌이 되었다. 교수가 강의할 때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되묻고 확인하며 더 넓게 지평을 넓힌다. 학생은 손 안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은 더 이상 상아탑의 상징도 아니고 교수의 권위도 아니다. AI시대 교수의 역할은 무엇인가? 슈마허 대학이 남긴 유산 슈마허 대학은 매주 수요일 밤마다 세계적 석학을 모셔 “earth talk”라는 열린 특강을 진행했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그 동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생태적 가치를 외치면서 채식주의를 추구하던 슈마허 대학은 아이러니 하게도 코로나19의 타격으로 2024년 9월 정식으로 문을 닫았다. 30년간 전 세계 생태주의자들의 성지 역할을 했던 곳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는 석유문명에 중독되었다"고 토트네스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성장과 효율성에만 매몰된 교육, 경쟁과 성취에만 집중하는 대학 문화 말이다. 누가 슈마허대학을 역사 속으로 묻어버렸는가? 기후변화가 현실이 된 지금,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슈마허대학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추구했던 지속가능하고 관계 중심적인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이다. 토트네스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이것이다. 변화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가 지속되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단해야 한다는 것. 다시 가볼 수 없는 그곳, 슈마허대학에 다시 가 보고 싶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9-23
- 46
안전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9월 23일(화)] 안전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양예은 기자 (kikiyye@jj.ac.kr) 내가 알던 모든 세계가 거짓이라면 어떨까? 가족, 친구는 물론, 내가 사는 공간 자체가 거짓이라면. 모두가 나를 알고 모두가 나를 모른 척하는 세상.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은 평생을 거짓 세상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트루먼 쇼’는 1998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로, 당대 최고의 배우 짐 캐리가 주인공을 맡았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 영화는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영화 속에는 호화스러운 대인원의 출연진도, 입이 떡 벌어지는 아름다운 로케이션도 없다. 그러나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건 언제나 영화의 메시지다.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세상이 ‘트루먼 쇼’의 촬영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트루먼은 바다 너머의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기 위해, 혹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그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트라우마를 마주하기도 하며 만신창이가 된 트루먼은 결국 세상의 끝에 닿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쇼의 제작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완벽하고 안전하게 만든 세상. 그 세상 안에서 트루먼은 지금껏 평탄한 삶을 살았다. 현실에는 절망과 부조리, 경쟁 등 치열한 고난이 가득하지만, 자식처럼 여긴 트루먼을 위해 완벽한 세상을 만들었다고 자신하는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마치 창조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촬영장 밖으로 연결된 출구를 찾아낸 트루먼에게 크리스토프는 말한다. “넌 나가지 못할 거야. 넌 한 번도 세상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잖아.” 트루먼의 일생을 TV로 지켜본 시청자도 숨을 죽이고 화면에 집중한다. 모두가 트루먼의 선택에 주목하는 순간, 트루먼은 일상의 여느 날처럼 시청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출구를 나선다. “못 볼지 모르니까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트루먼 쇼’가 사랑받는 이유는 엔딩 속 트루먼의 선택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과연 나도 그처럼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누구나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다양한 상황과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도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당장 대학에 다니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하루에 몇 번씩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사람마다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다르다. 안전하고 보장된 결과를 원한다면 익히 알고 있는 방향을 택할 것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난관을 통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미지의 세상을 택하게 될 것이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맞는 방식이 다르므로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도전하고 싶어도 용기가 안 나서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 트루먼처럼 여상히 인사를 건네고 한 걸음을 내딛어보자. 문을 나선 트루먼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정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주체적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안전하고 익숙한 세상을 그리워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특히 그렇다. 20대의 한 자락, 트루먼처럼 마음껏 부딪히고 넘어질 이들에게 응원을 건넨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9-23
- 57
위고비, 사회에 숨겨진 외모 강박을 드러내다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9월 23일(화)] 위고비, 사회에 숨겨진 외모 강박을 드러내다 이동현 기자 (ekaren33@jj.ac.kr) 최근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위고비’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이다. 이 약물은 인슐린 분비를 조절하고 포도당 생성을 감소시키며,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등 다양한 작용을 통해 체내 대사를 조절한다. 처음 당뇨병 환자에게 사용되다가 체중 감량 효과가 발견되어 현재는 비만치료제로 확장되었다. 의사의 적절한 처방과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비만 환자에게 사용될 경우 굉장히 효과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상 체중 또는 저체중인 사람들이 치료가 아닌 미용 목적으로 오남용한다는 점이다. 위고비의 치료 대상자는 체질량지수(BMI) 기준으로 명확히 정해져 있다. 하지만 비만치료제로 사용되어야 할 약물을 무분별하게 처방하거나, 온라인 불법 거래와 해외 직구를 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또한 약값 부담으로 인해 정해진 증량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 번에 고용량의 약물을 투여하다가 부작용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SNS에서는 위고비를 통해 한 달 만에 10kg을 감량하는 등의 후기들이 다수 공유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부추기고 있다. 위고비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다이어트라는 약효 때문만은 아니다. SNS와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는 끊임없이 날씬한 외모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심어준다. 날씬함이 곧 자기관리이자 매력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개인에게 강한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는 첫인상에 지나치게 종속된다. 날씬한 외모가 능력, 성실함, 자기관리까지 보장하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이 후광 효과가 위고비와 같은 약물의 오남용을 부추기고 있다. 겉모습에 대한 강박은 개인의 건강보다 사회의 외모 기준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한때 ‘기적의 약’으로 불렸던 약물들의 실패 사례도 존재한다. 1950~60년대 탈리도마이드는 임산부 입덧 완화제로 안전하다고 여겨졌지만, 수많은 기형아를 낳게 했다. 1990년대 ‘펜펜 다이어트약’은 체중 감량 효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심장판막 질환 등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나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또한 관절염 약물 바이옥스는 심혈관계 부작용으로 대규모 리콜 사례를 남겼다. 위고비 역시 10년, 20년 뒤 장기적 관점에서 부작용이 무엇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위고비 열풍은 사회가 만든 외모 강박과 통념에 맞닿아 있다. 날씬함을 미의 기준으로 삼고, 비만을 자기관리의 실패로 낙인찍는 문화가 사람들을 약물에 의존하게 만든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자존감 저하, 불안, 우울증, 섭식 장애, 사회적 관계 단절 등 다양한 부작용도 낳고 있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다양한 체형과 외모가 개성으로 존중받는 사회다. 약물에 기대는 단기적 해결보다는 사회가 만든 외모 강박과 통념을 되돌아보고, 개인의 건강과 자기 존중을 기반으로 한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9-23
- 40
에겐남, 테토녀? 밈으로 발견하는 나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9월 23일(화)] 에겐남, 테토녀? 밈으로 발견하는 나 김주은 기자 (2023 15018@jj.ac.kr) “빠르게 알아보는 에겐남 특징”, “테토녀가 끌리는 이유” 등 최근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미디어 콘텐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조어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크게 유행했던 MBTI 성격유형 이후로 ‘에겐, 테토’ 밈이 새롭게 떠오르는 화제다. ‘에겐’과 ‘테토’는 성호르몬의 명칭에서 유래한 단어다. ‘에겐’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Estrogen)의 줄임말로, 감성적 반응과 애착, 공감 능력이 강한 유형을 가리킨다.‘테토’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에서 유래하여 주도적이고 솔직하며 통솔력과 경쟁심이 강한 유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조어는 의학 용어에서 유래했으나 현재 대중적으로는 실제 개개인의 호르몬 수치와는 무관하게 사용되고 있다.이 신조어들의 활용은 단순한 성별 구분이나 생물학적 특성을 넘어, 개인의 성격이나스타일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이러한 밈은 SNS를 통한 이상형 담론에서 시작됐다. 성격, 외모, 라이프스타일, 취향 등 다양한 기준으로 성별 유형을 ‘에겐남’, ‘테토남’, ‘에겐녀’, ‘테토녀’의 네 가지로나누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 퍼져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에겐남’은 ‘에스트로겐 남성’의 준말로 섬세하고 다정하며 배려와 공감을 중시하는 남성을 가리킨다.반대로 ‘테토녀’는 ‘테스토스테론 여성’으로,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사회적 관계에서적극적으로 상대를 이끄는 모습을 보이는 성취 지향적 여성상을 일컫는다. 또한 한사람의 특성이 어느 한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만큼, ‘에테남’(에겐+테토남성), ‘테겐녀’(테토+에겐 여성)과 같은 방식으로 복합적인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신조어는 성호르몬을 뜻하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기존의 성별 이미지에서 벗어난 개인의 성향을 자유롭고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사회 규범과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며 ‘여성스러운 남자’나 ‘남성스러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개선됐다. 과거에는 이들을 전통적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는 소수개인의 독특한 특성으로 인식한 반면, ‘에겐남’, ‘테토녀’는 성격의 여러 유형 중 하나로 인식되어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난 유형이라는 편견을 줄였다. 이런 점에서에겐, 테토’는 성별과 성격유형을 묶어 네 가지로 분류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개인의성향을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든 셈이다. 나아가 모든 사람은 ‘에겐’의 특성과 ‘테토’의 특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며,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성격유형 분류가 그렇듯, ‘에겐, 테토’ 밈이 놀이와 자기표현을 넘어서 과열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해당 밈이 지나치고 무분별한 유형화로 이어진다면 앞서 살펴본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을 단순화된 프레임에 가두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에겐, 테토' 밈의 유행이 시작된SNS와 짧은 영상 콘텐츠의 특성상 빠른 전파와 재생산 과정에서 단순화가 이뤄지기쉽다. 따라서 과한 몰입을 경계하고 건강하게 문화를 즐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최근에는 사람이 가진 여러 특성을 ‘에겐’, ‘테토' 등 짧은 성별 이미지로 표현하다 보니 기존에 사용되는 언어가 밈으로 대체되는 현상도 보인다. 예를 들어 ‘부드럽고 유하게 보이지만 속은 강하고 단단한 사람’을 의미하는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이미 있음에도 ‘겉에겐 속테토’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신조어의 생성과 사용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지만, 밈 중심의 표현은 사고와 언어를지나치게 단순화할 우려도 있다. 밈에서 파생된 신조어를 편리한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향유자들이 밈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을 갖추어야할 것이다. 이처럼 이상형 담론에서 시작된 ‘에겐, 테토' 밈은 새로운 유형론 놀이 문화이자 자기표현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독특한 유형론을 즐기면서 사람을 유형에 가두지 않고 바라본다면 자신과 타인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고 더욱 깊이 이해할 수있을 것이다. 자신도 몰랐던 ‘에겐’과 ‘테토’를 발견하며 이 밈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9-23
- 38
초심(初心)은 언제까지나 초심이다.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6월 18일(수)] 초심(初心)은 언제까지나 초심이다. 편용우 교수님 (인문콘텐츠대학 일본언어문화학과) 전주대학교에 온 지 7년이 조금 지났다. 학과 소개 홈페이지에 걸린 사진을 보며 그때는 참 젊었구나라고 생각한다.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에 비례해 전주대학생들과의 추억, 대학 교육과 행정에 대한 지식도 많이 늘었다. 이제 많이 익숙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초심(初心)'이다. '초심'이란 불교에서 꺠달음을 얻고자 처음으로 일으킨 마음, 즉 '초발심(初發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처음의 마음은 어땠을까. 전주대학교에 처음 왔을 때, 일본 유학을 결심했을 떄, 그 떄의 각오가 변하지 않았다면 전주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는 우주 최강의 학과가 될 것이고, 나는 일본 고전문학의 세계 1인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은 점점 작아져 갔다. 일본술집의 화장실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교훈을 적은 종이가 종종 보인다. 물론 장난스런 기분을 즐기기 위한 여흥의 일종이다. '부모의 잔소리와 차가운 정종은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있다(親父の小言と冷酒は後で効く)'라고 하는 말과 함께 실로 부모의 잔소리와 같은 말이 가득한 이 종이에도 '초심을 잊지 말아라'라는 말이 들어 있다. 이렇게도 '초심'을 잊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심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초심을 잊게 되는 것일까? 애플의 창업자 스티븐 잡슨이 즐겨 읽었다고 하는 스즈키 순류(鈴木俊隆)의 『선종초심(Zen Mind, Beginner's Mind)』(김영사, 2013)이라는 책에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늘 유지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중략) 매 문장을 새로운 마음으로 읽어야만 합니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 안다’거나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비법입니다.(중략)어떤 진술을 들을 때 보통은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켜서 듣습니다.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견해를 듣는 셈이 되지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자신의 모든 선입관과 주관적 견해를 포기하고, 그저 듣기만 하십시오. 스즈키가 말하는 초심은 세상의 모든 일을 선입관이 없는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가 어떤 지식을 얻고 무엇인가 알았다고 생각할 때 그 지식이 오히려 새로운 지식습득을 방해하는 선입견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내가 초심을 잊어버린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주 최강의 학과에서 지구 최강으로, 다시 대한민국 최강으로, 초심이 낮아지고 있다. 학과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목표를 계속 낮추게 하는 것이다.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처음 마음 그대로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초심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일본인이 한 명 더 있다. 일본 고전 연극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아미(世阿弥)는 기예를 처음 익혔을 떄의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특히 노후에 기예가 일정한 경지에 이른 후라 하더라고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초심을 유지하며 기예를 연마하라고 한다. 초심에 도전이라는 또 다른 성격을 부여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학생은 입학했을 떄의 초심을 떠올려 보자. 자신의 초심이 익숙해진 대학생활과 함께 흐릿해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일정한 목표를 달성했기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흐릿해지고 만족하고 있다면 다시 명확히 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자. 왜나하면 '초심'이니까.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6-16
- 66
바뀐 길, 달라진 시선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6월 18일(수)] 바뀐 길, 달라진 시선 오유진 기자 (yujin03120@jj.ac.kr) 작년 다가교사거리에서 병무청오거리까지 이어지는 충경로 일대가 광장형 도로로새롭게 조성됐다. 차도를 뜯어내고 우회로를 만드는 공사가 끝난 후, 차도와 인도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 전체 공간이 평평한 광장형 도로가 되었다. 차선이 줄어들며 보행 공간에 차량이 무분별하게 진입하는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흰 코끼리(white elephant)’였다. 흰 코끼리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쓸모가 없고 유지 비용만 드는 사업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과거 동남아 왕실이 신하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흰 코끼리를 선물했다는 데서 유래된 표현으로 오늘날에는 공공 부문의 예산 낭비를 지적할 때 자주 인용된다. 그 도로는 흰 코끼리처럼 보였다. 멀쩡한 길을 뜯어고쳤지만, 큰 효용 없이 교통만 혼잡해지고 시민은 더 불편해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어느날 그런 생각을 바꾸게 만든 장면을 마주했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이편안하게 길을 건너는 장면을 봤다. 기존 도로와 달리 단차가 없기에 우회 없이 바로바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주말에는 캐리어를 끄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큰 불편함 없이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인도와 도로의 경계’는 컸다. 나는 아무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는 길이었지만, 유아차를 밀거나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과 보행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인도의 경계석은 돌아가야 하는 높은 벽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 순간 처음으로 ‘보행 약자’의 시선을 알게 되었다. 기존 도로는 효율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차가 빠르게 지나갈 수 있도록 넓은차로를 확보했고, 보행자는 빠르게 달리는 차를 피해 이동해야 했다. 그 결과 ‘빠른 도시’를 얻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도시’를 만들었다. 광장형 도로는 이 구조에 질문을 던진다. ‘반드시 차량 중심 이동이어야 할까?’, ‘거리에서 차보다 사람을 먼저 고려할수는 없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으로 광장형 도로가 만들어졌다. 도로가 변화할 당시에는 이동시간이 길어진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크게 느꼈다. 이후에도 줄어든 차선이 정체현상을 심화시켜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매번 버스를 통해 지나가는 길이라 차량 중심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 도로는 단지 ‘지나치는 길’이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살기 좋은 도시는 빠르게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보행 약자에게 평등한 접근권이 보장된 거리야말로 도시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아닐까? 물론 변화에는 불편이 따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이전보다 더 나은 가치를위한 과정이라면, 조금의 인내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광장형 도로는 단순 예산낭비가 아니라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사람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었다.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도 분초 단위로 움직이는 모습은 ‘분초 사회’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한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이제 나는 충경로 일대를 지나칠 때마다 “이 거리는 모두의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읽어낸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6-16
- 59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혐오, 위협받는 민주주의

[인터넷 전주대신문, 업로드일: 2025년 6월 18일(수)]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혐오, 위협받는 민주주의 전지은 기자 (uptoillie20@jj.ac.kr) 6월 3일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지면서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 유권자들의 가치관은 세대와 계층, 삶의 방식에 따라 점차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광주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호남권을 향한 뿌리 깊은 지역 혐오가 선거판 곳곳에서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혐오의 풍조는 계속되는 걸까? 『세습 중산층 사회』를 통해 세대 간 불평등을 분석했던 조귀동 작가는 최근 저서『전라디언의 굴레』에서는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 구조가 여전히 호남 지역을 짓누르고 있다고 진단한다. 2011년 매일경제의 보도“한국 성장 원동력은 정부 노력 >근면성 > 교육열 > 민간기업”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시절 전북은 경북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앞서 있었으나, 이후 경북 중심의 개발 정책으로 인해 양 지역 간불균형이 심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적 소외는 단지 경제적 배제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도덕하다’, ‘비국민이다’라는 사회문화적 낙인이 호남 지역 출신에게 씌워졌다. 책 제목이기도 한 ‘전라디언’은 인터넷상에서 전라도인을 향해 쓰이는 혐오 표현이다. 조 작가는 이를 단순한 지역감정을 넘어 “준(準 ) 인종적 차별”로 규정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이후 호남은 ‘항쟁의 도시’, ‘진보의 상징’이라는 정치적 정체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편향된 지역’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졌다. 낙후, 소외, 이념적 고착이라는 삼중의 낙인이 그 위에 덧씌워진 셈이다. 이러한 낙인은 오늘날 디지털 공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국민일보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팀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수집한 1억 2천만 개의 네이버 댓글을 분석한 결과, ‘전라도’ 관련 댓글의 80% 이상이 혐오 표현과 욕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프레임이 본격화된 2024년 3월에는, 그 비율이 96.8%에 달했다. 특정 지역을 향한 집단적 비난과 조롱이 선거 시점을 기점으로 폭발한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지역은 통계나 표심 지도로 단순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며,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공간이다. 이는 호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혐오가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순간, 정치의 쟁점은 갈등과 분열로 이동한다. 감정을 선 긋듯 나누는 방식은 결국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기반을 갉아먹는다. 지역 혐오를 멈추기 위해서 언론, 교육, 정치권 모두가 프레임을 걷어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유권자 역시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 인용 가능(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2025-06-16
- 72

전체목록